배현준 · 동북아역사논총 74호(2021) · 동북아역사논총 제74호, 2021, 7–41쪽
홍산문화는 흔히 요서 지역의 독자적 신석기 문화로 이해되지만, 그 형성과 전개 과정에서 중원(中原)의 앙소문화(仰韶文化)와 맺은 관계는 오래된 연구 주제이다. 앙소문화는 기원전 5000년기 이후 황하 중류에서 번성한 신석기 문화로, 붉은 바탕에 검은 안료로 기하·동물 문양을 그린 채도(彩陶)로 대표된다. 반파(半坡) 유형과 묘저구(廟底溝) 유형으로 크게 나뉘며, 특히 묘저구 유형의 화판(花瓣)·소용돌이 문양은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산되어 “초기 중국” 형성의 문화적 지표로 논의되어 왔다. 두 문화는 넓은 공간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신석기 후기 동아시아라는 같은 시간대에 나란히 번성했기에, 그 접점과 상호작용의 양상이 오래도록 주목받아 왔다. 이 글은 두 문화 사이의 관계를 토기와 문양을 중심으로 비교 고찰한다.
홍산문화에도 채도가 존재하며, 특히 비늘무늬·소용돌이무늬·평행선무늬 등 일부 문양 요소는 앙소문화 계통과의 접촉·영향을 시사하는 것으로 논의되어 왔다. 실제로 앙소문화 후기 묘저구 유형 채도의 영향권을 논할 때 요서 지역도 자주 언급되며, 두 지역을 잇는 접촉의 통로로 하북 북부·상건하 유역 등이 거론된다. 다만 홍산문화의 채도는 앙소문화만큼 채도 중심으로 발달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옥기와 대규모 제의 유구라는 독자적 전통이 두드러진다. 즉 홍산문화는 외래 요소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자기 문화의 문법 안에서 변용했으며, 채도는 그 문화의 중심이 아니라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이 글의 방법론적 초점은 문양의 유사성을 곧바로 “전파”나 “기원”의 증거로 읽지 않는 데 있다. 유사한 문양이 나타난다고 해서 곧 한 문화가 다른 문화에서 파생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며, 접촉이 어느 시기에, 어떤 경로로, 어떤 매개물(완제품 토기인지 제작 관념인지, 사람의 이동인지)을 통해 이루어졌는지를 단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같은 문양이라도 그것이 놓인 기종(器種)과 맥락이 다르면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채도 문양뿐 아니라 토기의 기종과 제작 기법, 매장 관습 등 여러 층위에서 유사와 차이를 함께 짚으면서, 두 문화의 관계를 일방적 영향이 아니라 쌍방향의 상호작용으로 재구성하려 한다.
이러한 접근은 “중원 중심”과 “요서 독자”라는 두 극단을 넘어서려는 문제의식과 닿아 있다. 홍산문화를 중원 문화의 파생으로 환원하면 그 독자성이 사라지고, 반대로 완전한 고립으로 보면 실제로 확인되는 문양·기술의 공유를 설명할 수 없다. 저자는 두 문화가 각자의 중심을 유지하면서도 접경 지대를 통해 물자와 관념을 주고받은 “관계망” 속에 있었다는 시각을 제시한다. 이는 장광직(張光直)이 제안한 “중국 상호작용권(interaction sphere)” 개념, 곧 여러 지역 문화가 교류하며 점차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해 갔다는 관점과도 통한다.
동시에 이 글은 그러한 상호작용권 논의가 자칫 모든 지역 문화를 “중국”이라는 하나의 목적지로 수렴시키는 목적론으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계한다. 홍산문화는 앙소와 교류했지만 앙소가 되지 않았고, 옥기 중심의 독자적 제의 전통을 끝까지 유지했다. 관계와 독자성은 배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관계 속에서 독자성이 뚜렷해진다는 것이 이 글의 함의이다.
앙소문화는 후기에 이르러 채도 전통이 쇠퇴하고, 흑도(黑陶)로 대표되는 용산(龍山)문화 단계로 이행한다. 홍산문화의 토기 전통은 이 중원의 흐름과 부분적으로 공명하면서도, 통형관(筒形罐) 등 요서 특유의 기종을 유지했다. 두 지역의 토기 변천을 나란히 놓고 보면, 접촉과 독자성이 어떻게 병존했는지가 더 분명해진다.
옥기의 관점에서 보면 홍산문화의 위치는 한층 두드러진다. 비슷한 시기 장강 하류의 능가탄(凌家灘)·양저(良渚) 문화 역시 정교한 옥기와 제의 전통을 발전시켰는데, 이들 옥문화는 중원의 채도 전통과는 다른 계통을 이룬다. 홍산–능가탄–양저로 이어지는 “옥의 벨트”는 채도 중심의 중원과 구별되는 동아시아 신석기의 또 다른 축을 보여 주며, 홍산문화를 이 넓은 옥문화의 북방 거점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홍산과 앙소의 관계는 단순한 남북 전파가 아니라, 각기 다른 전통(북방 옥문화와 중원 채도문화)이 접경에서 만나 서로 자극을 주고받은 과정으로 그려진다. 저자가 강조하는 “관계망 속의 독자성”은 이 구도에서 구체적 근거를 얻는다.
요컨대 이 논문은 홍산문화의 성격을 논할 때 흔히 전제되는 “독자성 대 외래성”의 이분법을 완화하고, 구체적 자료를 통해 두 문화의 관계를 정교하게 재구성한다. 홍산문화를 고립된 기적이 아니라 광역 교류망 속의 한 결절점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점에서, 이 글은 앞의 “초기 문명론” 논의를 공간적으로 확장한다. 문명의 발생을 한 지역의 내적 성취로만 설명하지 않고, 지역 간 상호작용의 산물로 이해하려는 최근 고고학의 흐름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키워드Keywords: 홍산문화,앙소문화,채도,교류,상호작용